잃어버린 양산 @카페 그리트

📷 리코(Ricoh) GR3 / GR3X

2023.08.04.FRI

주말이 지나고 일상의 시작인 월요일이 되자 양산이 사라졌다는 걸 인식했다. 마치 오븐 겸 찜통 안에 이 도시가 들어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어딘가에 있을 양산을 찾기 시작했다. 차에 있거나 사무실 책상, 두 곳 중 하나뿐인데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더 깊이 찾아보기 시작했다. 차 트렁크에서 신발장 안 우산꽂이까지. 보이지 않았다. 기억을 더듬어 저번주 목요일부터의 동선을 체크했다. 친구와 저녁식사를 한 곳, 아이의 병원과 약국에도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도대체 어디서 사라진 걸까.

하나 다시 사면되지 라는 남편의 말을 듣고 검색을 해봤지만 막상 다시 사려니 선뜻 구매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나름 백화점까지 가서 하나하나 펼쳐보았었다. 내 연령대에 맞게 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디자인을 찾아서, 무엇보다 나와 어울리는 양산이어야 했다. 내 인생 처음으로 사는 양산이기도 했고 저렴하지 않은 가격도 신중한 자세를 갖추게 하기에 충분했다.

새로 사지도 못하고 기억만 더듬고 있는 나를 보던 남편이 사무실 CCTV를 확인해 보자고 제안했다. 저번 주 목요일 퇴근길엔 양산을 챙겼다. 금요일에 챙겼다고 생각했던 기억의 오류가 발견되었다. 그럼 금요일 오전을 보자. 출근길, 양산을 챙기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자 그날 아침 카페 그리트에 들려 아이에게 줄 샌드위치를 샀다는 게 불현듯 떠올랐다. 남편과 내가 동시에 샌드위치를 외쳤다. 희열과 안도의 순간이었다.

금요일 아침에 손에 양산을 들고 그리트에 갔다. 자리에 앉아 기다린 뒤 포장된 샌드위치를 들고 나왔다. 내 손엔 양산대신 샌드위치로, 들려진 객체가 바뀌었을 뿐 들고 있다는 행위의 변화가 없어 망각되어 버린 것이었다. 그리트에 전화해 분실물 양산을 확인했다. 딱 일주일 만에 찾은 양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