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로잉 정거장을 다녀온 다음날이었다. 그곳에서 거품 물감과 스프레이 물감 하나씩을 사왔는데 아이는 그것을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엄마 칙칙- 하며 물감을 꺼내 달라 했다. 일요일 오후 점심을 먹은 뒤, 나른하게 늘어지려는 찰나여서 좀 귀찮기도 했지만 아이와의 놀이를 시작했다.
물감들을 모두 꺼내준 뒤 나는 한걸음 물러나 물감을 가지고 노는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드로잉 정거장에서 유리벽에 그림을 그렸던 것이 생각이 났는지 욕실 벽면에만 그림을 그렸던 아이가 이날은 유리로 된 문에 물감을 묻히기 시작했다. 물감이 손에 묻는 것을 싫어하는 아이는 항상 붓을 사용해 그림을 그려왔는데 이번엔 달랐다. 클렌징 폼과 같이 몽글몽글 폭신한 거품 물감을 짜보더니 조심스럽게 손으로 문대보기 시작한 것.
더 놀라운것은 아빠가 들어온 후부터였다. 아빠는 물감 하나를 집어 들더니 쭉쭉 짜주기 시작했다. 세상에! 신기하게도 아이는 너무나 즐겁게 웃으며 손으로 그 물감들을 문대기 시작했다. 아빠의 행동 하나로 아이의 놀이가 더 재미있고 특별한 놀이가 되었다. 드로잉 정거장에서 선생님들이 아이들의 놀이를 어떻게 유도하는지 보고 왔음에도 옆에서 지켜만 보던 나는 갑자기 부끄러워졌고 동시에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그렇게 물로 씻어내고 또 그려내고, 몇 번이나 그리했는지 모른다. 내 눈에 아이의 손짓이 만들어낸 작품은 그 어떤 예술작품보다도 멋졌다. 물로 씻어내는 게 아까울 정도로... 이날은 아이의 물감놀이 중 단연 기록할만한 하루였다. 아빠와 함께라 더더욱이 좋았을, 웃음이 끊이질 않았던 놀이시간이었기에... 남편과 아이의 웃음소리를 듣는 것만큼 나에겐 그만한 힐링이 없다. 육아의 힘듦도 그 웃음소리에 싹 없어지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