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암 1기, 그 후 일년
2023.01.03.TUE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신장암 1기 진단과 수술을 받은 지 딱 1년이 되는 날이다. 그리고 1월 3일은 내 생일. 올해 생일이 가까워질수록 유독 심장이 두근두근거리고 속이 울렁거리는 게 작년의 일을 몸이 기억하는 듯했다.
21년 12월 9일(지금껏 살아오면서 가장 충격적인 일이기에 정확하게 날짜를 기록해 놓았었다.) 기침과 몸살기운이 있어 건강검진도 받을 겸 가까운 병원을 찾았다. 엑스레이 촬영을 하고 진료를 받는데 폐결절성 결핵이 의심되니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의사소견을 듣고 동강병원으로 향했다. 동강병원에서 엑스레이를 보더니 CT촬영을 권유했고, 그 결과 전이성 폐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신장 쪽에 혹이 하나 있는데 이게 원반암일지 아닐지는 모르는 상태라 협력센터에서 울산대학병원으로 빠르게 예약을 잡아주었다. 마른하늘의 날벼락은 이럴 때 쓰는 거더라. 수액을 맞는 동안 그만큼의 눈물을 쏟아냈다. 내가 얼마나 살 수 있는 거지? 우리 아이는 어떡하지? 앞으로 5년은 살 수 있을까? 그렇게 살아도 우리 아이는 고작 11살밖에 안되는데... 아픈 곳이 없었는데 이렇게까지 전이가 올 수 있나? 오만가지 생각이 한 번에 교차했다.
차가워진 손으로 하염없이 어깨를 토닥여주는 남편, 얼굴색이 안 좋아지셔서는 발 빠르게 서울 쪽 병원을 알아보고 계시는 아빠, 하염없이 우는 엄마와 동생을 보고 있자니 이게 웬 불효인가 싶었다. 시련이 있는 자에겐 신이 있다고, 그동안 찾지 않던 하나님을 목놓아 불렀다.
다음날, 울산대학병원에서도 전이성 폐암이 의심된다며 뇌, 흉부, 복부, CT촬영을 다시 진행하였고 결과까지 일주일을 기다려야 했다. 이틀연속 금식으로 몸에 힘은 없고 기침은 심해갔다. 남편은 폐암에 좋은 도라지, 대추, 배를 넣은 물을 매일같이 끓여주었고, 나는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가족 모두가 살뜰히 보살펴준 덕분에 일주일 동안 서서히 기침은 줄어들었고 호흡도 좋아졌다.
21년 12월 17일. 일주일 전 CT로 진료를 보니 당연히 상태는 안 좋았고 난소에도 혹이 보인다는 소견으로 조직검사를 하기 위해 입원을 하게 되었다. 그야말로 첩첩산중 지옥이 따로 없었다. 6인실에 입원을 했다. 같은 병실은 물론 한 층을 다 돌아봐도 내 나이가 가장 어렸다.
나이 많으신 분들도 항암을 이겨내고 계시는데 나도 할 수 있다는 다짐과 치료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하다가도 슬픔과 무감각이 찾아왔다. 그렇게 감정의 소용돌이를 견디며 홀로 병실에 누워있었다.
병원에 오기 전 꿈을 꿨었다. 집안 커다란 창문으로 따사로운 햇빛이 내리쬐고 있었고 남편은 빨래를 널고 있었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이 갓 널은 빨래를 지나쳐 향긋한 내음을 가져다줄 것만 같은 평온한 장면이었다. 그때 누군가가 창문으로 들어왔는데 형체는 보이지 않았고 거인 발만한 커다란 발자국만 집안에 남아있었다. 기분이 좋으면서도 낯선 꿈이었다.
입원 둘째 날이 되었다. 계획에 없던 CT가 저녁에 잡혔다. 간호사분께서 전이암이 맞는지 확인한다고 하셨다. 이미 전이암으로 판정 난 게 아닌가? 뭐지? 긴장 반 기대 반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CT촬영을 마쳤다. 잠 못 이룬 밤이었다.
다음날 아침 Pet-CT를 찍고 병실로 돌아오니 이미 혈액종양내과 교수님의 오전 회진이 끝나 대신 간호사분께서 어제 찍은 CT결과를 알려주셨다. 폐가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깨끗해졌다는 기적과도 같은 이야기를.
오후엔 교수님이 오셔서 일주일 전 CT와 엑스레이를 비교하며 좋아진 부분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암이라면 일주일 만에 이렇게 좋아질 수가 없다 하시는데 너무 좋았다. 정말 정말 많이 기뻤다. 내 모든 세포 하나하나가 폭죽을 터뜨리며 춤을 추고 있었다. 이 날의 기쁨은 일기로도 남겨놓았다.
입원 3일 차(21.12.21)
pet ct를 찍는 동안 교수님의 회진이 끝나 뵙지 못하고 조금 지나 간호사 한 분이 오셨다. 어제저녁 급하게 다시 찍은 ct에서 폐가 깨끗하다는 이야기. 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가족들에게 먼저 이 소식을 전했다. 그동안 얼마나 마음을 썼던지 모두들 눈물부터 흘렸고, 남편의 엉엉하고 큰 소리 내어 우는 소리를 듣기도 처음이었다. 좋은 소식 덕분에 마음이 편안해져 챙겨 온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두어 장이나 넘겼을까, 병원 내부에 예쁜 멜로디가 울려 퍼졌다. 아이가 태어나면 멜로디가 울린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남편에게 해주니 "자기 다시 태어났네" 하는데 울컥. 정말 새 삶을 얻은 기분이다.
전이성 폐암으로 보이던 양상은 급성 폐렴으로 결론이 났다. 이미 호전된 상태라 약도 필요 없다 하셨다. 본의 아니게 자연치유를 해버렸다. 이게 다 남편이 지극정성으로 보살펴준 덕분인걸 나는 잘 안다.
난소에 보였던 혹은 일시적인 물혹으로 보인다며 3개월 뒤에 한번 더 보자 하셨고, 신장 쪽 혹은 90% 암인 것 같다고 하셨지만(10%에 기대를 걸었었지만 결국 암) 전이를 일으킬만한 암이 아닌 것만으로도 오래 살 수 있다는 큰 희망을 얻었기에 슬프지 않았다. 오히려 2.7cm 크기로 초기에 발견해 항암도 안 해도 되고 똑 떼내면 된다 하니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지옥 같았던 3주 동안 나의 소중함을 뼛속까지 느낀 남편은 새사람이 되었고 우리 부부의 삶의 가치관 또한 바뀌게 되었다.
전이암이 아니라 신장 수술 후 조직검사를 하기로 했다. 수술날짜는 1월 3일. 내 생일이었다.
수술은 깨끗하게 잘 되었고 2개월, 6개월 간격으로 두 번의 CT촬영이 더 있었다. 작년 9월을 마지막으로 아무 이상이 없었고 1년 뒤 CT촬영이 잡혔다. 병원은 갈때마다 두근거리지만 좋은 소식을 듣고 나오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새로 태어났다는 의미로 숫자 1 모양의 초를 작년 생일 케이크에 꽂아주었는데 올해는 2를 꽂아주던 남편. ㅋㅋ 큰일이 있고 나서 인지 올해 생일은 다들 유난히 풍성하게 챙겨주셨다.
꽃과 목걸이, 맛있는 스테이크도 먹여준 남편. 무려 다이슨 에어랩을 선물해주신 아주버님. 명품 화장품과 속옷, 타르트, 커피, 현금도(몇몇ㅋㅋ) 챙겨준 친구들. 반평생 살아오니 챙겨야 할 소중한 인연들이 뚜렷해진다. 평생 아끼고 보답하며 살아가야지.
그리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우리 아들.
엄마 나 작년 엄마생일 때 기억나. 나 그때 많이 슬펐어. 아빠랑 같이 울었어하며 눈물 글썽이는 내 아가.
엄마 죽지 마. 엄마 죽으면 나도 죽어하고 뜬금없이 말하곤 하는데, 아이에게 큰 상처를 준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이제 절대 그런 일 없도록 건강하고 씩씩하게 살아가야지. 사랑만 줘도 부족한 시간, 매일매일 보듬어 안아주기.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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