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경복궁

📷 후지(fujifilm) X-T4 / XF 23mm F1.4 R LM WR

2023.05.20.SAT

서울에 온 지 이튿날. 인사동 나인트리 호텔에서 나와 북촌마을에 예약한 숙소 청연재에 짐을 풀었다. 맛집이라는 곳에서 점심을 먹고 싶었지만 8살 아이와 웨이팅을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선택한 점심은 어제와 같은 국밥이다. 웨이팅도 없거니와 맛없기가 어려운 메뉴로 끼니를 해결하고 경복궁으로 향했다. 이 날의 일정은 경복궁과 창덕궁 달빛기행 두 곳이었다. 모두 북촌마을에서 10~15분 정도 걸으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다.

북촌마을에서 좀 더 가까운 입구가 있긴 했지만 광화문을 통과하려고 조금 먼 길로 걸어왔다. 제일 먼저 보인건 동십자각이었다. 궁궐은 궁과 망루를 합쳐 부르는 말인데, 이곳이 궐이라 불리는 경복궁의 망루(궁을 수비하는 곳)이다. 서남쪽에 있던 서십자각은 일제강점기 때 헐렸고, 현재는 동십자각만 남아있다고 한다.

광화문이 보였다. 광화문 앞으로 아직 공사가 진행 중이었는데 아마도 월대 복원 공사로 보인다. 일제 때 월대를 파괴하고 전차선로를 깔았다고 하는데 아픈 과거를 접할 때면 마음이 쓰리다. 월대는 달을 바라보는 곳이라는 뜻으로 건물의 권위를 높이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으며 이곳에서 각종 의식을 거행했다고 한다. 올해 10월 말까지 복원할 계획이라고 하니 멋지게 변해있을 광화문의 모습을 상상해 봐야겠다. 두근두근.

광화문 너머로 흥례문이 보였다. 이 자리에 조선총독부 건물이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어릴 적 뉴스에서 폭파장면을 봤던 기억이 남아있어 검색을 해보았는데 역시나 흉물은 흉물이다. 광화문은 2006년부터 해체(일제에 의해 북쪽으로 이동되었다가 박정희 대통령 때 제자리로 옮겼는데 축이 맞지 않았다.)해 2010년도에 복원했다. 흥례문은 2011년도에 복원되었다.

20대 때(04년이나 05년 즈음) 왔을 때랑은 다르게 경복궁이 낯설게 느껴졌던 건 그간 복원공사를 거쳐 예전모습을 되찾아 이토록 훌륭한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광화문에 멋진 수문장들이 서 계셨다.

수문장 교대의식 일정이 있었는데 수문장 교대의식은 10:00, 14:00(소요시간 20분), 광화문 파수의식은 11:00, 13:00(소요시간 10분), 수문군 공개훈련은 9:35, 13:35(소요시간 15분)에 볼 수 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엔 마침 광화문 파수의식을 막 시작할 무렵이었다.

협생문 바깥에서 진행한 파수의식을 다 보고는 다시 흥례문과 광화문 사이로 들어왔다. 흥례문을 들어가기 위해선 입장권을 사야 한다. 대인은 1인 3,000원, 만 24세 미만은 무료다. 한복을 착용해도 무료라 한복을 입고 경복궁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중엔 기생복장과 머슴복장을 한 남학생들이 귀여워 좀 많이 웃었던 것 같다.

흥례문을 통과하자 근정문이 나왔다. 흥례문과 근정문 사이에는 임금의 영역과 백성의 영역을 나누는 경계인 금천이 흐르고 그 위에 영제교가 놓여있다. 뿐만 아니라 조회 때 정 2품 이상은 근정문 앞에, 그 이하 관직은 영제교를 지나 흥례문 쪽에 서있었다고 한다. 정치의 시작지점인 셈이다.

근정문을 지나면 근정전이. 두근두근두근.

'정치를 부지런히 함'이라는 정도전의 철학이 담겨있는 근정전. 임금은 근정전에 들어설 때 이 뜻을 재차 마음속에 새겼을 것이다. 한편으론 피로감이 들기도 하지만 임금이라면 마땅히 그리해야 한다.

'검이불루 화이불치' 검소하면서도 누추한데 이르지 않고, 화려하면서도 사치스러운데 이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경복궁 포스팅을 하려니 때아닌 공부를 하게 되었다.ㅋㅋ) 이렇듯 궁궐의 미학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모습의 근정전이다. 거기에 위엄하기까지 하다. 2단으로 된 높은 월대 위에 자리하고 있기에 절로 우러러보게 된다. 상월대에는 동서남북을 지키는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가 하월대엔 용(용은 임금을 뜻하기 때문), 개, 돼지가 빠진 12지신상이 배치되어 있다.

근정전 앞으로는 품계석이 정 1품부터 쭉 나열해 있다.

어좌가 놓여 있는 근정전 내부. 어좌 뒤에는 왕의 존재와 권위를 상징하는 일월오봉도가 있다.

근정전에서 나와 경회루가 있는 곳으로 이동을 했다. 경회루 근처에 카페 겸 굿즈샵인 '사랑'이 있었다. 덥고 다리가 아프다며 징징거리는 아들을 달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기념품 몇 가지를 골라 결제하고 얼음 가득 커피와 음료도 주문했다. 비치된 의자에 앉아 잠시 숨도 고랐다.

숙소에서 찍어본 굿즈들이다. 마그네틱들과 아이가 고른 기와집 오르골, 제일 왼쪽 그립톡은 창덕궁 달빛기행에서 받은 기념품이다. 기와집 오르골은 DIY제품으로 아이가 집에 오자마자 혼자서 설명서를 열심히 봐가며 완성까지 해냈다.

자, 다시 경복궁으로 돌아가서~

경복궁을 둘러보다 힘들 땐 경회루 근처에서 휴식을 가져보면 될 것 같다. 제법 머리 위까지 내려온 나뭇잎을 만져보려 점프도 해보고, 개미들 구경도 해보며. ㅋㅋ

반듯하고 정직해 보이는 누각 경회루는 임진왜란 때 불에타 돌기둥만 남아있다가 고종 때에 경복궁을 다시 지으면서 함께 지어졌다. 그때 화제로부터 경회루를 지켜달라는 의미로 청동용 두 마리를 넣었다고 하는데 실제로 발견되었고 지금은 고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경회루는 특별관람 예약을 해야 들어가 볼 수 있어서 아쉽게도 밖에서만 바라보았다.

아마도 교태전으로 갈 수 있는 쪽문인 자사문이다. 안쪽으로 들어가 경회루가 보이게끔 사진을 찍는다고 한다. 안 그래도 사람들이 많아 밖에서만 보고 지나쳤는데 뷰포인트가 있었다니 이 또한 아쉽다.

경회루 돌기둥에 동그란 하얀 자국들은 한국전쟁당시 총탄의 흔적이라고 한다. 작은 다리 기둥에 자리 잡고 있는 불가사리 중 코가 없는 것도 있는데 그 역시 전쟁 중 훼손이 되었다. 궁궐답사는 아픈 역사도 함께 되짚어야 하기에 가슴이 먹먹했다.

흥복전은 고종이 영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 사용하였던 창의궁의 함일재를 옮겨지었다고 전해진다. 일제 때 헐려 일본식 정원이 들어섰다가 현재 복원 중에 있다. 고종이 사신을 접견하던 곳으로 내년즈음 단청을 칠한다고 하니 그 모습이 궁금해진다.

건립당시 고종과 명성황후의 침전으로 사용되었던 함화당의 행각 뒤로 보이는 산은 경복궁의 차경을 담당하는 북악산이다. 한복을 입은 외국인들과도 잘 어울리는 풍경이다.

행각을 따라 쭉 걸으면 집경당의 동쪽인 우측에 있는 봉황문이 나온다. 안쪽 함화당까지는 안 들어가고 집경당만 쓱 훑어보았다. 집경당은 고종이 신하들과 경서를 읽거나 외국공사를 접견하는 장소로 사용된 곳이다.

집경당 북쪽으로 가면 아름다운 누각 향원정이 나온다. 향원정은 향기가 멀리 간다라는 뜻으로 외관의 아름다움 또한 향기 못지않다. 벤치에 앉아 바라보고 있으니 빼어난 자태에 취할 것 같다. :)

고종과 명성황후가 주로 사용하였던 건청궁은 경복궁의 가장 북쪽에 위치해 있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어난 곳인 곤녕합이다. 경복궁의 아프고 슬픈 역사를 또 만나게 되었다. 먹먹함에 다른 곳보다 조금 더 오래 머물렀던 것 같다. 이곳을 다녀온 뒤 영화 '영웅'을 보게 되었는데 곤녕합이 생각나면서 더 깊이 몰입하면서 봤던 기억이 난다.

넓디넓은 경복궁을 아이와 함께 모두 둘러보기엔 무리가 있었다. 가보고 싶었던 왕실 도서관 집옥재는 가지 못한 채 경복궁을 나서기 위해 남쪽으로 걸어 내려왔다. 대비전인 자경전을 지나쳐 교태전과 강녕전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래도 경복궁에 왔으니 왕과 왕비의 처소는 보고 가야지.